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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삶에도 인디가 필요하다

삶에도 인디가 필요하다 #2 - <반-했나> 여성뮤지션들의 합동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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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도 인디가 필요하다 #2

 

 

 


<반-했나> 여성뮤지션들의 합동 공연

 

 


1997년 서면시장 안 패션몰 모던타임즈 4층에 복합 <문화공간 반(反)>이 문을 열었다. 이곳은 주로 인디밴드공연, 영화강의, 프리마켓이 복합적으로 이루어지는 공간이었다. 영화와 음악,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관객들은 주말이면 <문화공간 반(反)>에 모였다. 당시 키노의 편집장이었던 정성일 씨와 퀴어 영화제 프로그래머였던 서동...진 씨가 강의를 하곤 했다. 강의실 아래층에는 실험적인 사운드를 선보인 밴드 <새봄에 핀 딸기 꽃>, 카리스마 넘치는 여성 록 밴드 <엽기적인 알사업>, 그로테스크한 감각의 진수를 보여준 <레이니 썬>과 같은 밴드의 공연이 이어졌다. 인디밴드 공연의 주 무대였던 부산대에서 <몽크>, <쉬바>, <너바나>와 같은 공연장이 있었고, 공연장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씨네마떼끄 1/24>에서는 주목받는 아시아영화와 고전영화, 예술영화가 영화의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인디’와 ‘독립’의 바람은 문화공간을 탄생시켰고, 창작자들은 활발하게 자신의 작업을 꽃 피웠으며, 관객들은 그 사이 공간들을 종횡무진하며 함께 문화를 만들어나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인디’나 ‘독립’이 홍대에서 들끓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지역에서 만들어지는 창작활동들도 동등한 선상에 있었다는 것이다. <크라잉 넛> 옆에 <레이니 썬> 음악이 있었고, 서울독립영화 앞에는 부산독립영화가 함께 성장했다. 그만큼 창작의 신선함과 열기가 있었고, 문화공간과 관객이 어우러져서 지역에서 만들어지는 문화, 예술을 지역과 중앙이라는 이분법적인 구도로 환원하지 않았다.(그렇게 본다면 지금의 김일두의 음악과 김태춘의 음악이 서울의 음악 씬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은 주목해야 할 일임과 동시에 지난 부산 인디 씬을 떠올려 본다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부산에서 만들어진 인디음악과 독립영화를 보고 들으며 성장한 관객이 이후에 영향을 받아서 음악을 만들기도 하고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열기들은 지속되지 못한 채, 여러 이유로 인해서 공간은 문을 닫았고, 사람들은 각자의 길을 걸어야만 했다. 그 기이한 열정으로 만났던 시간의 문은 소리 소문 없이 닫혀져 간 것이다.

이 닫혀간 시간들을 얼마 전 카페 <업스테어>에서 열린 여성 뮤지션들의 합동공연<반-했나>에서 다시 접속할 수 있게 되었다. 여성뮤지션들의 합동 공연이라는 것 자체만으로도 주목할만 했고, 공연 리플릿에 소개되어 있는 여성뮤지션들의 활동 상황에 대한 글에 한번 더 눈길이 갔다. 바로 1997년 뜨거웠던 ‘인디’와 ‘독립’의 흐름 속에서 만났던 여성 락 밴드 <헤디마마>와 <엽기적인 알사업>에서 활동했던 여성 뮤지션들을 이름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헤디마마>의 보컬을 담당했던 자이(정혜정), <헤디마마>의 기타와 보컬로 활동했던 조연희 <엽기적인 알사업>의 기타리스트로 활동했던 윤진경, 밤의 정서를 노래하는 밴드 <nightshade>의 김윤정(니낙), 밴드 <스템프>활동 후 솔로로 나선 진경, 건반의 수지와 기타의 주영, 두 사람으로 구성된 어쿠스틱 듀오<달콤씁쓸한>, 이 뮤지션들은 바통과 바통을 이어받으며 갈고닦은 무림고수로, 개개인의 색깔과 목소리가 담긴 노래를 들려주었다. 이날의 <반-했나>공연은 부산에서는 처음으로 여성뮤지션들이 한자리에 모여 공연을 한 기념비적인 날로 기록/기억되어야 하며, 90년대 후반부터 활동을 시작했던 뮤지션과 현재 활동을 하고 있는 뮤지션들을 연결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공연은 더욱 의미가 있다. 이들이 이렇게 한자리에 모인 소회와 소감은 말과 노래를 통해서 전달되었다. 관객석에서 그것을 받아 안은 우리들은 한동안 할 말을 잃었다. 거기엔 노래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노래를 부르는 사람의 삶의 시간이 함께 묻어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시간은 공간이 문을 닫고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진 후 남겨졌던 우리들의 시간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90년대 부산에서 탄생했던 여성 락 밴드<헤디마마>와 <엽기적인 알사업>은 해체되었다. 그 이후 밴드에서 활동했던 이들은 다른 밴드를 만들기도 하고, 솔로로 활동을 하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그 시간을 견디면서 음악을 하기위해서 얼마나 고군분투 했을까?가 아니라, 이제는 음악이 삶이 되었음을 증명하는 그들의 목소리에 조금 더 귀를 기울이는 것이 아닐까 한다. 곧 다시 뭉쳐서 공연을 한다는 소식이 들려오기를 기다리며 다음 말을 아껴두고 싶다.

2013년 7월 13일 저녁 7시 30분
부산대 앞 <카페 업스테어>

기록: 2013년 7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