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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場)/간(間)/들(多)/사이- 공간

작지만 생생한 생활이 담긴 저장소, 우리 모두의 <곳간>을 열자

 

 

 

작지만 생생한 생활이 담긴 저장소,

 

우리 모두의 <곳간>을 열자

 

 

 

 

 

 

 

아직 아무 것도 채워지지 않은 빈 <곳간><생각다방 산책극장>에서 한 달간 진행되는 재()계발 중 하루를 맡으며 첫 문을 열었습니다.< 생각다방 산책극장>과 함께 한다는 설레임과 작은 떨림 속에서 생활예술모임 <곳간>은 함께 모인 이들에게 건네는 말을 낭독하며 <모든 가장자리에서>를 시작하였습니다.

  

<생각다방 산책극장>은 그간 오랜 시간동안 일상과 놀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말을 나누는 문화를 만들었기 때문에 누군가의 말을 중심으로 모인다는 것은 다소 낯선 풍경일 것입니다.< 곳간>은 ‘모임’의 형식으로 행사를 진행하기보다는 하나의 밴드()가 되어 공연(퍼포먼스)을 한다는 생각으로, 더 나아가 <모든 가장자리에서>라는 앨범을 함께 연주한다는 생각으로 A()B(기록)으로 ‘따로 또 같이’ 호흡을 맞춰보고자 했습니다. 마치 이인삼각 경기처럼 한발 한발 움직인다는 것이 <곳간>의 호흡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생각다방 산책극장>이라는 공간의 호흡과 그날 그곳의 모인 ‘친구들’의 호흡이 한 데 어우러질 때 가능하다는 것을 체감하면서 큰 울림이 받았습니다. 그 울림이 <곳간>에게는 큰 선물이었습니다.

 

A면은 삶의 낮은 곳이면서 가장 생생한 곳이기도 한 ‘가장자리’에서부터 시작되는 만남을 백무산의 시편을 매개 삼아 시작해보았습니다. 세상의 모든 가장자리로 예배드리러 가겠다는 시인의 목소리가 <생각다방 산책극장>에 당도한 우리를 향한 환대의 말처럼 느껴졌습니다. 얼핏 ‘시’는 일상의 낮은 자리가 아닌 일상 너머의 먼 곳에서 홀로 빛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언어의 결정들을 누군가에 애써 건넬 때 작은 등불이 된다는 것, 그 등불이 비추는 일상 속으로 걸어 들어갈 때 각자의 삶과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해석’이 개인의 역량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관계 맺음의 방식에 좌우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곳간>이 건네는 시를 <생각다방 산책극장>에 모인 친구들이 잘 응해주면서 빈 <곳간>에 소리와 말을, 웃음과 공기를 불어넣어주었습니다.

 

 

백무산의 <너를 쬐어야 한다>는 일상의 놀이를 통해서 관계 맺기를 생각하고 또 실천하고 있는 건형 님이 읽어주셨고,< 소명>은 제주도에서 오신 리니 님이,< 어진 사람>은 영화의 관객들이 주인이 되는 삶을 응원하는 ‘모퉁이극장’의 현수 님이,< 춤추는 인간>은 평범하고 당당한 소설가 김비 님이,< Can>은 부산의 문화공간과 모임의 ‘어진’ 관객인 은진 님이,< 감수성>은 만나는 모든 이를 환대하는 모퉁이극장의 아인 님이,< 마당이 없는 집>은 도전과 실험으로 일상 속에 수많은 놀이를 만들고 있는 ‘놀이 마법사’ 히요 님이,< 그 모든 가장자리들><곳간>의 빈 구석구석을 보듬어주는 선우 님이 낭독해주었습니다. 그와 함께 모퉁이극장의 혜경 님, 영광 님, 7월 한달동안 중앙동 ‘키친케이’를 맡고 있는 멜리 님, 음악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는 호정 님, 산복도로 카페의 은수 님 도형 님께서 말을 건네주고 또 보태주셨습니다.

 

 

 

B면은 모든 가장자리와 지금의 <생각다방 산책극장>, 가깝게는 우리의 삶을 기록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시작해보았습니다.< 산책극장 생각다방>은 ‘백수들의 실험실’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흩어져 있던 개인의 생각이 실현되는 실험의 공간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곳에서 만들어진 수많은 놀이들과 사람들이 오고 가며 남겨진 흔적들이 지금의 <생각다방 산책극장>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곳간>은 그 시간의 저장고가 바로 다방의 ‘블로그’라는 소중한 발견을 하게 되었습니다. 매일의 ‘일기’가 기록임을 보여주는 다방의 블로그에는 2011년 다방을 열기 위해 시작된 공사부터(공사놀이) 현재까지의 무수한 놀이와 공간을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빈터에서 시작된 공간에 문틀을 만들고, 페인트를 바르며 누군가가 앉을 수 있는 자리가 하나 둘 만들어지고, 함께 이야기를 나눌 손님이자 친구들이 그 공간을 가꿔나갔습니다. 그렇기에 다방은 다방의 생활(역사)뿐만 아니라 친구들의 생활(역사)도 함께 기록되어 두 가지의 생활(역사)이 함께 교차합니다. 장소와 사람이 만나서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놀이로서의 문화, 특별하거나 뛰어나지 않아도 자신의 재능을 공유하면서 그것을 더욱 풍성한 것으로 만다는 다방. 이런 실험들이 겹겹이 쌓여서 지금의 <생각다방 산책극장>이라는 ‘하나의 장르’를 우리가 만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할듯합니다. 다방이 일기라는 형식으로 블로그에 기록을 시작했듯이, 어떤 특별한 삶만이 기록되거야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이 삶은 저마다의 관점으로, 방식으로 매순간 기록되어야 한다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들의 곳간>을 만드는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공간을 잠시 닫는 동안 <곳간>이 문을 열지만 서둘러 이 장소를 애도하기보다 현정 씨의 말을 거듭 떠올려봅니다.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거 같다” 그리고 이렇게 응답하고 싶습니다. “다시 만나질 것이라고” 말입니다.

<생각다방 산책극장>과 생활예술모임 <곳간>, 그리고 더 많은 작은 모임들과 그곳에 스며들며 자신을 삶을 꾸려가는 모든 이들을 생각하며 백무산 시인의 <그 모든 가장자리를>을 건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곳이 기계적고 체계적인 방식으로 반복되는 무미건조한 별이 아니라 수많은 만남들이 만들어내는 해일과 같은, 태풍과 같은, 화산과 같은 힘들이 잠재되어 있다는 것을, 바로 그곳을 우리가 보살피고 가꿔나가야 하는 일이, 만나고 나눠야 하는 일이 우리 앞에 있음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모든 가장자리                            백무산

 

 

우리 사는 곳에 태풍이 몰아치고 해일이 뒤집고

불덩이 화산이 솟고 사막과 빙하가 있어 나는 고맙다

나는 종종 이런 것들이 없다면 인간은 얼마나 끔찍할까

지구는 얼마나 형편없는 별일까 생각한다네

 

내가 사는 곳이 별이란 사실을 언제나 잊지 않게

지구의 가장자리가 얼어붙고 들끊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네

도심에 광야를 펼쳐놓은 비바람 천둥에도 두근거리네

그래도 인간들 곁에서 무엇보다 그리운 건 인간이지

 

한두세기 만에 허접한 재료로 발명된 인간이 아니라

인간이 걸어온 모든 길을 다 걸어온 인간은 어떤 인간일까

계통발생의 길을 다 걸어 이제 막 당도한 인간은 어떤 인간일까

그 오랜 인간의 몸에 내장된 디스크 메모리를

범륜처럼 굴러보았으면 싶은 건데

 

그래서 나는 버릇처럼 먼 외곽으로 자꾸만 발길이 간다네

아직 별똥별이 떨어지고 아무것도 길들어지지 않는 땅에

먼 길 걸어 이제 막 당도한 인간이 더러 살고 있을 그런 곳에

잠에서 깨어나 창을 열면 이곳이 별이라는 생각

 

벌거벗은 인간이구나 하는 생각으로 눈을 뜨기를

그래서 나는 습관처럼 인간의 가장자리를 사회의 가장자리를

그 모든 가장자리를 그리워한다네

한 십만년을 소급해서 살고 싶다네